통일경제를 준비하는 원예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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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8.06.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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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농업개발과 협력은 북한 변화와 노력이 성공 좌우한다

■평화시대 북한의 농업개발 방향과 협력

김 영 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 영 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7년 북한 식량생산 471만 톤으로 2% 감소
농촌진흥청은 매년 다양한 여건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추정해 발표하고 있다. 2017년 말 발표된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정곡 기준 471만 톤이다.(표 참조).
2017년 북한의 식량 생산이 감소했으니 올해 식량 수급사정이 악화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다소 섣부른 판단이다. 그 정도의 생산 감소는 수입을 늘려 메울 수도 있고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조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올해 북한의 식량사정은, 다른 변수가 없는 한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예년과 큰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최근 5년간 북한의 식량 생산이 정체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2013년에서 2016년까지 생산량은 연간 480만 톤 내외 수준에 머물렀으며 2017년에는 오히려 감소했다. 이 사실은 식량위기 이후 2000년대 들어 북한이 여러 개혁 및 개방 조치들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가 농업생산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 결과는 당장의 식량부족 해소뿐만 아니라 향후 북한의 농업생산 향상과 발전에 대한 전망도 어둡게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세 차례의 개혁 조치, 불분명한 성과
2002년 북한은 경제 전반에 걸친 개혁조치를 취했다. ‘7·1경제관리개선조치’는 사회주의 경제관리 방식에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조치였다. 그러나 농업부문에서는 생산에 적용할 동기유발 수단이 뚜렷하지 않아 농업생산의 신장은 가져오지 못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김정은 집권 직후에는 농업생산부문에서 2012년과 2014년에 두 번의 개혁조치를 연이어 취했다. 하나는 ‘6·28방침’이고 다른 하나는 ‘5·30조치’이다. 6.28방침에서는 국가/농장 간 농산물 분배를 농장에게 좀 더 유리하게 하였으며 협동농장의 최소 생산단위인 작업분조를 축소해 개별경영에 근접시키는 데 주력했다. 5.30조치는 개별 농장원에게 책임농지를 할당하여 가족 단위의 영농을 부분적으로나마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한 차원 더 진전된 개혁조치라 할 수 있다.
이 두 조치는 농민에게 인센티브를 보다 확실하게 부여하여 생산성 향상을 꾀하자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인센티브 개혁조치가 영농현장에 잘 적용되면 생산성이 향상되고 농산물 공급이 증가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농업의 개혁조치는 중국의 사례에서와 같이 농업생산의 증대를 가져오지 못하였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의하면 2013년에서 2017년까지 4년간 북한의 식량 생산은 기상변동에 따른 증감 속에서 정체하거나 오히려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농업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해 취해졌던 그간의 북한 농정과 농업개혁 조치들은 모두 어떻게 된 것인가?

▲만성적 식량부족과 자본부족이 개혁의 발목 잡아
2012년과 2014년 두 차례의 농업개혁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 농업의 생산 증대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는 농업개혁 조치의 작동에 ‘외적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혁을 뒷받침해야 할 물적 토대인 자본 즉, 투입재 조달이 원활하지 못하고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농업생산성 향상에 한계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두 번째로는 북한의 식량부족 현상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내적 제약’도 있다. 당장 식량이 부족하고 앞으로도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하에서는 전면적인 농업개혁에 착수하기 어렵다. 식량 부족 상황에서 북한 당국이 배급에 의존하는 대다수 주민의 수요를 외면한 채 유능한 농민에게만 식량을 더 분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농업개혁은 농업생산 증대를 촉진하고 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반면, 균등 배급제를 약화시켜 배급 의존계층과 취약계층의 식량난을 가중시키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충분하고 지속적인 식량 공급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농업개혁의 요체인 농민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도 사실상 어렵게 된다.
김정은 정권 들어 두 차례의 중요한 농업개혁 조치에도 불구하고 농업생산 증대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은 것은 농업개혁 앞에 가로놓여 있는 두 가지 제약요소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개혁의 착수와 확산, 농민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도시 주민에 대한 식료품 공급의 유지 등을 동시에 이루기 위해서는, 개혁 초기 농업생산에 투입돼야 할 자본과 함께 ‘사회주의’ 정부가 조달·공급해야 할 농산물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불완전한 개방으로 자본 유치도 실패
한편, 같은 시기 북한은 개방 조치도 다양하게 취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북한은 지원이나 원조 유치를 위한 개방을 통해 NGO와 국제기구, 각국의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들 지원과 원조는 대부분 확대재생산 구조에 편입될 농업자본의 유치라 볼 수 없으므로 논외로 하기로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농업생산성 향상이나 농업 발전을 견인할 자본 유치를 위한 개방이다. 물론 북한은 이를 위한 개방 조치도 취했다. 이는 주로 외국인 투자 관련 법규를 보완하거나 기존의 중앙 경제특구를 개편하거나 지방급 경제개발구를 새로 지정하는 정책으로 나타났다. 이중 특별히 농업에 해당되는 사례는 북청, 어랑, 숙천 등 3개 지역의 지방급 농업개발구 설치를 들 수 있다. 경제 일반에 대한 개방이든 농업을 겨냥한 개방이든 투자만 유치된다면 북한 농업부문은 직간접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농업생산이 상승해 식량공급이 보다 안정될 수 있으며, 외부로부터 새로운 생산기술과 기자재를 도입해 이전에 생산할 수 없었던 고급 농산물을 생산할 수도 있고, 생산성 향상과 농산물 수출을 통한 농업소득 증대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중앙 경제특구와 지방 경제개발구에 외국 산업자본의 투자가 기대만큼 이루어지지는 않은 것 같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가 외국의 투자자를 이끌 만큼 인적·제도적 환경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으며, 특히 교통·통신·에너지 등 투자에 필요한 물적 기반도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의 경제개방 의지나 조치와 관계없이 2016년 이후 대외 교역과 외국인 투자 여건은 더 크게 악화되었다. 북한의 거듭된 핵과 미사일 실험에 따라 국제사회의 제재가 전에 없이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남북한 간 경제교류의 유일한 통로로 남아있던 개성공단이 폐쇄되었고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가중되었다. 이는 북한의 개방과 투자유치 노력을 좌초시켰을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가 북한 경제 자체를 좌초시킬지도 모를 위력을 행사하고 있다.

▲농업개발의 주체는 북한, 국제사회는 조력자일 뿐
다행히 올해 들어 근본적인 전환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고질적인 북한 핵 문제 해결과 함께 종전과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전망이 점차 밝아지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미 간 대화가 모두의 기대대로 전개된다면 머지않아 농업부문에서의 교류와 협력도 재개될 것이며 과거에 비해 더 활성화될 수 있다.
이 경우에 대비해 준비할 필요가 있다. 과거 한때 시도했으나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던 농업개발 방식을 보완해 다시 추진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 중 하나를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 당시 추진되었던 ‘농업복구 및 환경보호 계획(Agricultural Recovery and Environmen Protection Program, AREP)’ 사례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현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개발협력 방식이다. 이는 북한 주도로 중장기 농업·농촌복구개발 프로그램을 수립하되, 국제사회가 프로그램 실행 단계별로 소요되는 자본과 기술을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물론 북한은 모든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국제사회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노력도 능동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농업개발 협력사업을 특정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추진하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기존 북한의 특구개발 구상에는 농업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다음 세 가지 측면을 고려할 때 특구 인근지역을 대상으로 농업개발 협력 프로그램을 수립해 시행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연관효과 창출이다. 특구에 유입된 외국 자본이 지역 주민의 소비생활을 통해 본토로 유입될 수 있도록 배후지 산업, 즉 농업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특구의 농산물 수요 증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구에 외국인 투자가 유입되면 주민의 소득이 상승하고 농산물 수요가 증대될 것이다. 이에 대비해 인근 배후지에 농산물 생산 및 공급기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농업 관련 전후방 산업의 발달 촉진이다. 특구 배후지의 농업개발은 특구 안팎의 농산물 유통이나 농자재 조달 관련 산업도 함께 발달시킬 것이다.
대도시와 특구 배후 농촌지역에 대한 농업개발협력 사업이 성과를 거두게 되면 두 가지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나는 그 농업개발 방식을 다른 지역으로 확산시켜 북한 본토의 농업 발전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외국과의 농업협력을 공적 개발협력에서 민간의 상업적 투자협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특정지역을 대상으로 한 개발협력의 성공과 전국적인 확산, 공적 개발협력에서 민간의 상업적 교역과 투자협력으로 협력방식의 전환, 이는 북한 농업개발을 위한 대북 농업협력의 비전이다. 그러나 이를 현실로 구현하는 주체는 북한이며 요체는 북한의 실질적인 개혁과 개방이다. 요컨대, 북한의 변화와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