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경제를 준비하는 원예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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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8.06.1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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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원예작물의 중요성 점차 커질 것”

■남북협력시대 원예산업의 나아갈 길

강병철서울대학교 식물생산과학부 원예생명공학전공 교수
강병철서울대학교 식물생산과학부 원예생명공학전공 교수

최근 몇 주간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급변했던 북미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불확실성이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만담으로 해소되었고 드디어 6월 12일 개최 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우리 주변을 둘러싼 여러 나라들의 정치적 역학 관계와 지금까지 북한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남북이 완전한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2018년 한반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반가운 변화는 우리에게 국가 발전에 엄청난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본격적으로 추진됨으로써 북한과의 다양한 경제협력 사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북한의 경제 발전을 위한 철도, 도로, 통신 등 여러 가지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와 협력이 남북고위급 회담의 주제로 우선적으로 논의되고 있지만 북미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농업부문의 협력은 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분야이다. 북한은 1990년 대 중반 오랜 경기 침체와 잇따른 자연재해로 극심한 식량난을 겪었다. 특히 1995년부터 1998년까지의 기간을 북한 스스로 ‘고난의 행군‘이라 할 만큼 어려운 시기였다. 최근 들어 북한의 농업생산성이 크게 신장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남한의 농업생산성 대비 52%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로 전문가들은 비료, 농약, 종자 등의 농자재 부족과 낮은 품질, 농기계 및 연료 부족, 농업용수 부족과 불안정, 잦은 자연재해와 농작물 피해 등을 꼽고 있다. 산림분야의 교류가 먼저 추진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자연재해를 예방하여 그 나마 생산된 농작물의 피해를 막겠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으로 시작된 북한과의 교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및 이명박 정부 초까지만 해도 정부 및 민간 차원에서 대북 지원과 투자가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그러나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되고 이후 북한의 잦은 도발로 5·24 조치가 내려지면서 남북 간의 모든 교류와 협력이 중단되었다. 5·24 조치 이전의 농업과 관련된 교류와 협력은 정부와 민간의 식량 및 비료 등 농자재의 인도적 지원 사업과 민간과 지자체의 품종 개량 및 종자생산, 목장 및 양계장 설치 운영, 채소온실 설치 운영 등 농업개발협력 사업 등의 형태로 추진되었다. 이 기간 동안의 여러 가지 지원과 투자는 북한의 식량난 완화와 농업생산의 증대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북한 주민의 삶의 개선 효과도 가져왔다. 이러한 긍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북 사업이 북한의 실질적 수요와 무관하게 추진되거나 성과가 지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협력이 이루지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지속성의 측면에서  원예 분야의 성공 사례인 월드비전의 대북 협력 사업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원예 산업 분야의 남북협력 방향을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월드비전은 1950년 한국전쟁 중에 고 한경직 목사님과 미국의 밥 피어스 목사님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NGO로 성장하였다. 월드비전은 대북 협력사업 초기에는 긴급구호를 위주로 한 인도적 사업을 추진했으나, 1998년부터는 씨감자와 채소 생산, 과수 묘목 및 채소 육종 지원 사업을 중점적으로 추진하였다. 이중 씨감자 사업과 채소채종연수단교육 사업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월드비전의 개발협력 원칙은 ‘생선을 그냥 주지 않고 생선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다. 씨감자 사업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줌으로써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월드비전은 씨감자 생산체계 수립 지원 사업을 통하여 2000년부터 북한의 5개 지역에 씨감자 생산 시설 설치를 지원하고 2005년부터는 개마고원 대홍단군을 중심으로 씨감자 증식사업을 추진하였다. 이 사업을 위해 사용된 품종은 농촌진흥청 고령지농업연구소에서 육성한 추백(북한에서는 두벌감자 2호로 알려짐)이며 양액재배 기술을 통해 씨감자 원종 생산 체계를 확립함으로써 북한에서 감자의 생산성이 4배나 증가하였고 북한에서는 이를 ‘감자농사혁명’이라 부를 만큼 큰 성공을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이사업을 통하여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월드비전의 탁월한 협력 역량이 뒷받침이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으나 추백이라는 북한 지역에 적합한 품종과 약 30여명에 달하는 남한의 전문가들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식량난을 해결하고자하는 북한의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씨감자 생산 사업은 앞으로 추진될 북한과의 농업협력 사업에서 시금석으로 삼아야 할 사례로 꼽고 싶다.
2010년 5·24 조치이후 남북 간의 사회·문화·경제 부문의 모든 교류와 협력이 중단되었으나 월드비전이 2008년부터 추진해오던 채소채종연수단교육 사업은 2015년까지 지속되었다. 이 사업은 북한 농업과학자의 역량강화를 위하여 북한의 농학자를 중국 단동 등지의 농업과학원으로 초빙하여 원예학 전반에 대한 이론 교육과 채소종자 생산과 관련된 실습을 포함한 연수를 2년 동안 진행하는 것이다. 이론 교육은 채소, 과수, 토양 분야에 걸쳐 남한의 대학교수와 농촌진흥청 연구자들이 담당하였고, 민간종자회사의 실무자들이 실습교육을 진행하였다. 지금까지 4기에 걸쳐 총 25명의 북한 학자가 연수를 마쳤고 이들은 북한에서 농업 분야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도 2015년 강사로 참여하여 연수생들을 교육한 경험이 있는데 개인차는 있었으나 이들의 의욕과 이해력은 매우 우수하였다. 앞으로 교류가 활발해 지면 남한의 앞선 원예 분야의 기술을 북한에 전수하는 일은 물질적인 지원 이상으로 중요할 것이다.

북한의 농업생산은 옥수수, 감자, 쌀 등 식량 작물 중심으로 되어 있어 당장은 식량작물의 생산 증대를 위한 협력이 추진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필자가 월드비전 초청으로 2015년 12월 평양을 방문했을 때 놀란 것은 평양남새(채소)과학연구소와 평양 근교의 장천남새전문협동농장의 규모였다. 평양남새과학연구소는 약 40만평 규모로 대규모 수경재배시설이 갖추고 토마토, 오이 등을 재배하고 있었고, 장천남새전무협동농장은 약 20만평 규모에 수백동의 채소재배 온실에서 채소를 재배하고 있었다. 겨울이라 난방을 하지 못해 작물의 생육 상태는 불량하고 병해충 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으나 이러한 엄청난 규모의 생산 시설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평양에서만은 채소에 대한 엄청나 수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울러 2011년에는 대동강 변에 약 1,000 ha 규모의 사과 농장을 조성사업을 벌였는데 이는 과일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판단된다.

남북 간의 교류가 확대되고 북한의 경제가 발전하면 남한의 농업이 식량작물에서 원예작물로 중요성이 높아진 것처럼 북한도 원예작물의 중요성이 점차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로 평양 등 대도시에서는 이미 채소 및 과일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농업분야의 교류가 진행된다면 단기적으로는 농자재와 기술 지원으로 북한의 원예작물의 생산성을 높임으로써 북한 주민의 영양 불균형을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협력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원예작물이 환급작물인 만큼 농가의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영농지도를 지원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정체된 국내 원예 산업의 출구를 마련해 주기 위하여 기술력을 갖춘 국내 종자회사, 농자재 회사 등 다양한 농업 관련 기업들이 북한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현재 수입되고 있는 농산물 중 북한에서 값싸게 생산이 가능한 품목 위주로 생산시설을 갖추게 하여 북한으로부터 직접 수입하거나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