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천천히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7.04.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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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간격으로 숨 가쁘게 울리던 전화벨 소리가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어느덧 묘목 심는 시기가 지나가고 있나 보다. 2월부터 4월까지,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기에 앞서 더 좋은 작목을 그리고 더 좋은 품종을 심고자 하는 이의 열망이 투영돼 이 시기는 늘 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올해는 유난히 체리 묘목 구매에 관한 전화가 많았다. 아마 3개월 동안 받았던 전화 중 70%는 체리였던 것 같다.

체리는 요사이 소비자와 농업인에게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는 과종 중 하나이다. 2014년 200ha에 불과하던 체리 재배면적은 최근 3∼4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증가해 500ha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초 실시한 새해 설계교육과 권역별 전정교육에는 농업인과 귀농을 앞둔 예비 농업인이 900명 이상 참석할 정도로 체리에 관한 관심이 뜨거웠다. 그러면 체리를 심고자 하는 많은 농업인들은 체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시작할까?

지금껏 내가 받은 체리 민원 전화는 비교적 단순했다. 어디서 체리 묘목을 살 수 있는지 무슨 품종을 심어야 하는지 대응하기에 따라서 간단하게 답변할 수 있는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자신의 농장경영 방식, 수형(나무모양), 대목 그리고 품종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나무부터 심은 경우 실패한 사례를 너무 자주 봐왔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꼼꼼히 물어보고 답변을 해주었다.

체리는 사과, 배, 복숭아에 비해 대중적이지 않은 과종이기 때문에 쉽게 체리 재배 농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제대로 된 모델 과원이 거의 없기에 배우고자 해도 누구한테 자문을 구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서둘러서 나무를 심기보다 까다롭게 하나하나 따져보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내 과수원에 꼭 맞는 좋은 묘목을 고르는 것이 절반의 성공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올해 가을 체리 묘목을 심고자 한다면 적어도 다음 세 가지를 체크해 보자. 첫째, 체리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은 알고 시작하자. 농촌진흥청 농업과학도서관(http://lib.rda.go.kr) 사이트에 들어가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체리에 관한 책이 많이 있다.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체리재배 알아야 할 25가지」이 책은 꼭 읽고 시작하자. 쉽게 풀어 쓴 얇은 책이라 조금만 시간을 투자한다면 기본적인 개념을 잡고 가는데 도움이 된다.
둘째, 이제 내 농장 경영방식에 맞는 수형과 대목을 선택해보자. 과실나무를 다뤄본 경험이 적고 체리 재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면 수형 만들기가 비교적 쉬운 개심자연형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 경우 왜성대목보다 일반대목(콜트 등)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밀식재배로 단위면적당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경우에는 왜성대목(기셀라 5호 등)에 접목된 묘목을 심어 주간형, 케이지비(KGB) 수형으로 키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왜성대목 묘는 일반대목 묘에 비해 나무세력이 약해 재배환경이 나쁜 경우 잘 죽기 때문에 물 빠짐 등 토양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셋째, 체리는 수확 전 열과에 매우 약하므로 품종 선택 시 비가림재배 여부를 먼저 고려하여야 한다. 비가림시설 없이 노지재배를 하는 경우에는 품질이 아무리 뛰어나도 수확기가 장마기와 겹치는 만생종 품종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체리는 자신의 꽃가루로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품종이 다르더라도 친화성이 없는 경우도 있으므로 적어도 3∼4품종 이상을 섞어 심는 것이 좋다.

옛 중국속담에 천천히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고 했다. 이 속담처럼 까다로운 체리 재배, 서둘러서 시작하는 것보다 꼼꼼히 따져보고 천천히 시작하자. 신중히 선택한 만큼 시행착오가 줄어든다면 결코 더 늦게 가는 것이 아니다. 올 가을 나무심기 시즌이 다가오기 전에 나의 농장경영방식, 수형, 대목, 품종 순으로 체리 묘목을 깐깐하게 선택하길 바란다. 

■남은영<농진청 원예원 과수과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