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 분류체계의 변화와 대응방안
버섯 분류체계의 변화와 대응방안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7.01.1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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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꼬리버섯을 민간에서는 특유의 은은한 살구향 때문에 살구버섯이라 부르기도 하고, 버섯의 모양이 노란 오이꽃을 닮았다는 이유로 오이꽃버섯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생물종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부르면서 발생할 수 있는 혼동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학계에서는 카를로스 린네가 제창한 학명 체계를 사용한다. 학명은 라틴어를 기초로 하여 속명과 종소명 명명자명으로 구성되며 통상적으로 하나의 생물은 하나의 학명만을 갖는다.

하지만 지구상에 유일하게 하나의 생물종이 두 개의 학명을 동시에 보유하는 것을 인정받아온 생물군이 있는데, 바로 곰팡이 그룹이다. 곰팡이는 감수분열을 통한 유전자 교차가 일어나는 유성세대와 체세포분열 중심의 무성세대라는 두 가지 생활방식을 갖고 있다. 이 두 단계에서 나타나는 형태학적 특성이 매우 상이하여 각각 독립적인 학명을 부여하여 사용하고 있다.

배양실험을 통해 유·무성세대 간의 연관성이 밝혀지곤 했지만 이러한 실험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최근 분자생물학과 계통분류학의 눈부신 발전은 곰팡이의 세대 간 연관관계 규명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이는 곰팡이에서도 더 이상 두 개의 중복된 학명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곰팡이 분류학계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2010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개최된 세계균학회(IMC)에서 일균일명(一菌一名) 체계 도입 필요성에 대한 균학자들 사이의 교감이 이루어졌고, 이듬해 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세계균류분류위원회(ICTF) 주최 국제 심포지엄을 통해 곰팡이 일균일명 원칙에 관한 선언서가 발표되었다. 같은 해 7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제18차 국제식물학회의(IBC)에서는 새로운 국제명명규약(ICN, Melbourne Code)을 통해 곰팡이의 일균일명 원칙을 공식화하였다.

이는 단순히 곰팡이 명명 원칙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형태학 중심의 곰팡이 분류가 분자적 분류 중심으로 전환되는 변곡점이 되었다. 이에 따라 각 곰팡이 종(species)의 대표 학명을 정하기 위해 산업적 중요도가 높은 주요 분류군을 중심으로 소위원회가 조직되어 갑을논박을 벌이고 있다. 2017년 제18차 국제식물학회의 검토를 통해 2018년판 국제명명규약으로 성문화되기 전까지 당분간 곰팡이 명명에는 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균류의 한 종류인 버섯의 분류체계도 분자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형태학적으로 동일한 종이라 여겨졌던 버섯이 여러 개의 종으로 세분화되기도 하며, 분류학적 위치가 뒤바뀌고 심지어 버섯의 학명이 변경되기도 한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항암보조식품으로 인기가 높은 상황의 학명은 Phellinus linteus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 계통분석 연구를 통해 Sanghuangporus sanghuang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영지의 경우 학명이 Ganoderma lucidum으로 알려져 있지만 기준표본과 동아시아 지역의 균주간의 유연관계가 멀어 G. lingzhi라는 새로운 학명을 부여 받았다. 국내 유통 중인 상황, 영지 품종 모균주를 대상으로 한 후속 연구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 식품원재료DB에 등록된 상황과 영지의 학명은 여전히 P. linteus와 G. lucidum으로 되어있어 올바른 검역 및 관련 식품의 품질관리 기준 설정을 위해 조속한 수정이 요구된다. 버섯 연구에서 시료의 분류·동정은 가장 기초적인 과정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분류학적으로 완전히 정립되지 않은 버섯을 다룰 때에는 형태학적 검경뿐만 아니라 반드시 기준균주나 기준표본과의 분자생물학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며, 최소한 믿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염기서열 정보와 비교해 보아야 한다.

당분간 버섯의 분류학적 혼란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분자생물학적으로 한 번 정립된 분류체계는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될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이미 뉴클레오티드 염기서열의 단편적인 정보에 기초하여 버섯을 동정할 수 있도록 하는 DNA바코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법을 이용하여 샘플 내 생물다양성 및 분포특성을 조사하는 메타지놈 분석, 유전변이를 이용한 종, 품종, 원산지 판별기술 개발 등으로 응용분야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한재구<농진청 원예원 버섯과 농업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