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과일 이야기 2 - 대한민국 과일산업대전 우수작 (박윤희)
나만의 과일 이야기 2 - 대한민국 과일산업대전 우수작 (박윤희)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3.12.0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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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사과

▲ 박윤희씨
“시어머니 몰래 과일을 사다가 감춰 놓고 먹다니....내가 먹는게 아까웠니?”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시어머님이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나에게 현관문을 열자마자 큰소리로 꾸중을 하셨다. 손에는 화장대 서랍에 두었던 사과가 들려 있었다. 결혼한지 몇 년이지만 그처럼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얼른 신발을 벗고 들어와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는 말부터 하였다. 어머님이 특히나 좋아하시는 사과를 혼자 몰래 먹을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를 설명하는데 눈물이 나왔다.
결혼하고 바로 임신을 하였다. 늦은 결혼이라 함께 살고 있는 어른들은 무척 좋아하셨다. 이것저것 챙겨주시고 예뻐해주셨다. 그런데 얼마뒤 정기검진에서 뱃속의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나보다 어른들의 충격이 컸었다. 무척이나 장남의 첫손주를 바라셨는데...그래도 괜찮다며 나를 먼저 걱정해주시며 몸과 맘을 추수리게 도움을 주셨다.
몇 달뒤 다시 임신을 했지만 결과는 또 자연유산이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임신을 했고 더더욱 조심하고 애를 썼지만 자연유산을 하고 말았다. 의사에게 습관적인 유산이 될까 걱정이라는, 임신하기 힘들겠다는 말을 듣고 절망을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시어른들께도 많이 죄송해서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괜찮다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했지만 모두 내 잘못인거 같아 늘 죄인인듯한 마음이 한구석에 늘 있었다.
시간이 한참이 흘러 몸에 이상을 느끼고 병원을 다녀오니 임신이었다. 또 한번 아이가 우리 곁에 찾아왔다는 기쁨이 컸지만 혹시 또다시 유산이 될까 조심스러웠다. 어른들게 말씀드렸다가 금방 안좋은 소식을 전하게 될까 두려웠다. 그래서 좀더 안정이 되고 병원에서 괜찮다는 말을 들을때 까지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문제는 입덧이었다. 심하지는 않지만 음식냄새를 맡기가 거북하고 과일만 먹고 싶었다. 특히 사과가 자꾸 생각이 났다. 평소에는 좋아하지 않던 과일인데 껍질째 한입 깨어물면 단맛이 나고 아삭거리는 사과 생각만 하면 입에 침이 고였다. 밖에서 먹기도 했지만 한밤중에도 먹고 싶을때가 있어 사과를 사다가 몰래 먹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화장대 서랍에 넣어 두었는데 하필이면 그 사과를 어머님이 찾을 것이 있어서 서랍을 열었다가 발견하신 것이었다.
어머님의 화를 진정시키며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다.
“미리 말씀드렸다가 이번에 또 아이를 잃게 되면 실망하실까봐 두려웠어요. 근데 너무 사과가 먹고 싶어서 그만....”
말하면서도 그동안 죄송했던, 남들은 순탄하기만 한 임신과 출산이 내겐 왜 이리 어려울까 하는 설움에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그때 어머님은
“아이의 유산이 네 잘못은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잖니. 우리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주었나 보다. 미안하다” 하시며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다음날 직장에 다녀와서 보니 화장대위에 붉은 빛이 돌고, 흠집하나 없는 잘 익은 사과가 바구니에 가득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임신 기간 내내 어머님은 사과를 챙겨주셨다. 그 덕분인지 난 아주 건강한 첫손자를 어머님께 안겨드렸다. 그때 눈물까지 글썽이며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그때의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어머님은 같이 살고 있지 않지만 해마다 가을이면 제일 빛깔이 좋고, 잘익은 놈(?)으로 채워진 사과 한상자를 보내주신다. 그 사과를 나보다 우리 아들이 더 먼저 한입 깨어 물고는 “할머니 사과 짱 맛있어요. 보고 싶어요” 하는 전화를 한다.
안타깝게도 어머님은 이젠 사과를 잘 드시지 못한다. 치아가 빠지고 약해지셨다. 틀니를 해드렸는데도 딱딱한 음식은 아직 부담스러워 하셨다. 어머님과 잘익은 사과를 쓱쓱 문질러 닦아 껍질째 한입씩 베어먹는 날이 다시 올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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