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과일 이야기 1 - 대한민국 과일산업대전 최우수작 (김화순)
나만의 과일 이야기 1 - 대한민국 과일산업대전 최우수작 (김화순)
  • 원예산업신문
  • 승인 2013.12.0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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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梨)에 얽힌 사연

▲ 김화순씨
며느리가 손자를 낳아 서울의 병원에서 며칠을 묵다가 대전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KTX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고속버스를 타게 되었다. 여러 날 며느리의 해산 뒷감당에 피곤했으나 자리에 앉아서도 이내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고 있자니 말똥거리는 첫손자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버스가 출발하여 한참을 갔을 무렵 뒤쪽에서 차멀미를 하는지 젊은 여자가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내가 그만 먹으라고 했잖아.”
젊은 남자가 아내를 나무라며 토한 분비물을 치우고 있었다. 내가 뒤돌아 자세히 보니 젊은 여자는 배가 불러 있었다. 아마 임신 6개월은 넘은 듯 보였다. 좀 진정되었나 싶으면 여자는 또 다시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대전에 거의 다 도착할 때까지 계속하였다. 버스안의 사람들은 모두 이맛살을 찌푸렸으나 나는 주마등처럼 스치는 옛일에 웃음만 지었다. 내가 젊어서 첫애를 가졌을 때의 일이었다.
“여보, 할아버지 제사가 내일 모레인데 노는 날이 아니니 당신 혼자서 다녀와야 할 것 같아요.”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공휴일이 아닌 무시 날이라 하여 나 혼자 시할아버지 제사에 다녀오라고 했다. 물론 지금처럼 도로시설이 좋고 자가용이라도 있었다면 한 시간 거리일 테지만 30여 년 전이야 어디 그러했는가? 결혼한 지 불과 1년이 좀 넘었을까? 혼자서 시집에 가기가 왠지 어려웠다. 그래도 결혼을 해서 처음 맞는 시할아버지 제사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어머니께서는 기름 냄새가 난다며 임신한 나에게 아무것도 시키지 않으셨다. 사실 작은 댁 식구들까지 왔으니 손품이 많아 마땅히 내가 할 일도 없었다. 저녁 12시가 되어 제사를 지내고 있는데 제사상에 올린 배가 눈에 띠었다. 순간 그 배를 먹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던가! 배를 한 입만 베어 물어 배 즙을 꿀꺽 삼키면 원이 없겠다 싶었지만 많은 시집 식구들 앞에서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아직 제사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얼른 제사만 끝나라. 그러면 내가 저 배 한 덩어리를 그냥…….’
그런 생각을 하니 목이 더 타고 하얀 배를 베어 물었을 때 흘러나오는 과즙만 생각이 났다. 그날따라 왜 그리 제사지내는 것이 더디었던지……. 어느새 제사가 끝났다.
“음복들 해라.”
주방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내 귀에 시아버지의 말씀이 들렸다. 그렇다고 얼른 달려가 배를 집어 들고 베어 물을 수도 없었다.
“너는 국을 푸는 것이 왜 이리 깔끔치 못하냐?”
시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퍼 놓은 국그릇을 보니 미역 건더기가 국 그릇 가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었다. 온 신경이 제사상의 배에 쏠려 있었으니 국을 푸는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작은 집 시동생들이 제사상의 배를 집어 들더니 술 한 잔과 함께 우적주적 배를 안주삼아 씹어 먹는 것이 아니던가? 결국 제사상에 올렸던 배는 모두 시동생들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어슴푸레한 기억에 아마 그해는 배가 흉년이 들어 무척 비쌌던 걸로 기억이 된다. 그래서 그랬던지 시동생들에게도 그 해의 배 맛은 별미였던 것 같았다. 요즘 사람들 입에서 꿈은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러나 그날 밤 나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설거지를 하다 보니 제사 음식을 차렸던 바구니에 여유로 더 산 배 한 덩이가 남아 있었다.
‘저 배는 내 차지다. 모두 잠들었을 때 살며시 먹으리라.’
부랴부랴 설거지를 하면서 조금 있다가 배를 깎아 먹을 생각을 하니 손까지 부르르 떨렸다.
“여보, 뭐 시원한 것 좀 없어요? 술을 먹었더니 목이 마르네.”
시아버지께서는 갑자기 목이 마르다고 하셨다.
“배 드릴까요?”
시어머니의 말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입은 바짝바짝 타 들어갔다. 결국 시아버지께서는 시어머니께서 깎아주신 배를 모두 잡수셨다. 정말 모든 사람들이 원망스러웠다. 남편만 옆에 있었다면 눈짓으로나 아니면 말로도 먹고 싶다고 했을 텐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그날 저녁 어떻게 잠을 잤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하얗게 깎은 배만 아른거렸으니……. 지금 같았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배를 먹었을 텐데 그 때는 새색시였기에…….   
“조심해서 가거라.”
시어머니의 당부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뛰다시피 하여 시장에 다다랐다.
“아주머니, 이 과도 하나 주세요.”
나는 칼까지 사서 과일 가게에 이르렀다.
“배 다섯 개만 주세요.”
값이 얼마인지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달라는 대로 다 값을 치렀다. 그리고 우선 가게에서 하나를 벗겨 허겁지겁 먹었다. 그렇게 맛있는 배는 지금까지 먹어보지 못했다.
“새댁이 무척 배가 먹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하기야 뱃속에 애가 설 때처럼 먹고 싶은 것이 있을 라고…….”
과일가게 주인은 내 심정을 이해해 주었다. 가게를 나와 버스터미널에 오면서 나는 배 다섯 덩어리를 다 해치웠다. 배를 더 샀더라면 더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차가 출발하자 속이 울렁거리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계속되는 구토는 나를 초죽음으로 몰고 갔다. 배를 살 때 싸준 비닐주머니는 오물로 가득했다. 차안에서 싸늘하게 쳐다보는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된 구역질에 나 살기 바빴다. 배 다섯 덩어리가 다 거꾸로 넘어오고서도 끝나지 않았다. 겨우 진정되었다 싶었을 때 차는 멈추었고 나는 기어서 집에 닿아 남편 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 때 배에 놀라 지금 배를 먹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배는 맛이 있다.
나는 뒷좌석에서 계속 구역질을 하며 토하고 있는 젊은 여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만 먹으라고 했다던 남편의 지청구도 봐 줄 수 있었다. 더럽다는 생각도 잠시뿐 그 새색시가 무엇을 어떻게 먹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궁금할 뿐이었다. 또 여자라면 모두가 겪어야 하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드리워진 신비가 아니던가! 그러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며느리의 얼굴을 그려봤다.
‘혹시 우리 며느리도 그동안 먹고 싶었던 것이 있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 있었는지…….’
버스에서 내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가는 새색시의 뒷모습이 40여 년 전 꼭 나와 닮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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